[중앙칼럼] 한국과 미국의 ‘사법 리스크’
평행이론인가. 미국과 한국의 정치판이 꽤 닮았다. 도널드 트럼프와 이재명. 전직 대통령과 전직 대통령 후보. 주어만 바꾸면 상황은 거의 같아 보인다. 최근 둘은 비슷한 시기에 최초 기록을 세웠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전·현직을 통틀어 미국 대통령으로서 형사 범죄로 기소된 첫 사례가 됐다. 혐의는 34건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헌정사상 최초로 검찰의 구속영장이 청구된 제1야당 대표로 기록됐다. 의혹만 10여 가지다. 둘을 둘러싼 찬반 논쟁은 갈수록 격화하고 있다. 뉴욕과 플로리다를 중심으로 ‘트럼프가 대선에서 이겼다’는 피켓이 다시 등장했고, MAGA 모자를 쓴 지지자들이 자주 보이기 시작했다. 한국에는 개딸(개혁의 딸)들이 있다. 이 대표까지 나서 자중하라고 했지만, 여전히 단일대오다. 주말이면 광화문은 조용할 날이 없다. 공화당과 더불어민주당의 반응도 거의 같다. “정치 검찰이 정적을 제거하려 한다.” 당사자들도 점잔만 빼지 않는다. 트럼프는 3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마녀사냥, 한때 위대했던 우리나라가 지옥으로 가고 있다”고 적었다. 또 그는 선거자금 모금을 위해 발송한 이메일에서 “우리나라는 무너졌다. (하지만) 나는 미국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할 수 있고 2024년 나라를 구할 것이다”라고 했다. 이 대표는 ‘검찰의 창작 소설’, ‘윤석열 검사 정권’, ‘검찰의 미친 칼질’처럼 거친 표현도 마다치 않았다.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 부지사의 재판 기록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가 고발도 당했다. 고 김문기 성남 도시개발공사 개발1차장과의 관계를 따지는 재판에서는 변호인을 통해 “눈 마주친 사진도 없다”고 항변했다. 둘의 자신감에는 근거가 있다. 기소 소식이 알려진 지난 30일 공화당 경선 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트럼프는 52%로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21%)를 2.5배 가까이 압도했다. 악시오스는 30일 하루 만에 500만 달러 이상의 정치자금이 트럼프에게 몰렸다고 전했다. 압도적인 169석 거대 야당을 이끄는 이 대표의 주변도 일사불란하다. 기소 시 당직 정지를 골자로 한 당헌 80조는 ‘정치 탄압’ 유권해석에 무력화됐고, 이번에 담금질을 잘 마치면 ‘명검’이 될 것이란 당내 기대감까지 나오고 있다. 둘과는 체급 차이가 나지만 LA 10지구 시의원 마크 리들리-토머스(MRT)도 사법 리스크에 직면했다. 지난 30일 연방 법원은 그의 19개 혐의 중 7개에 대해 유죄를 평결했다. 연방 검찰에 따르면 최대 100년이 넘는 징역형이 가능하다. 이후 MRT는 잠행 모드에 돌입했지만, LA의 일부 정치인들은 그를 옹호하고 있다. 평결 직후 캐런 배스 LA시장은 그를 친구이자 40년 이상 된 동지, LA에 큰 영향을 준 선구적인 사상가라고 칭했다. LA 경찰 커미셔너위원회의 스티브 소보로프와 캘리포니아 상원의 스티브 브래드포드 의원은 나란히 MRT의 업적을 적은 트윗과 성명을 내놨다. 마이크 보닌 전 시의원은 “내가 아는 MRT는 지치지 않는 챔피언이고, 꺾이지 않는 수호자이며, 멈추지 않는 힘이다”라고 추켜세웠다. 사법 리스크의 무게는 절대 가볍지 않다. 일반인이면 휘청할 정도다. 하지만 역풍이라도 받아내는 것이 정치인이다. 순교자가 되는 것도 정치판에서는 훈장이고, 남는 장사다. 이성이 실종된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옳고 그름은 더는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오직 남느냐, 쫓겨나느냐만 남았다. 류정일 / 사회부장중앙칼럼 미국 리스크 사법 리스크 전직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